2013년 3월 18일 월요일

하나님의교회에서 어머니 하나님께서 건네는 천국혼인잔치 초대장~~~




한 나라의 왕 혹은 대통령의 결혼식에 초대를 받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퍽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곧 이보다 더 영광스러운 초대를 받게 될 것입니다.
1937년 10월 28일자 동아일보 2면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습니다. 기사의 제목은 ‘신부 실종’이다. 기사는 혼인을 일주일 앞둔 신부 김영자의 행방을 찾는 내용입니다. 결혼식을 코앞에 두고 신부가 없어지다니, 신랑과 가족들이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요!!
성경에도 이 사건과 흡사한 내용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2:1~14)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잔치에 손이 가득한지라 ··· 가

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속에는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신부가 보이지 않습니다.
신랑과 하객은 있는데 혼인잔치의 주인공이자 꽃이라 할 수 있는 신부는 어디로 갔을까요? 혹자는 “성경의 신부는 성도들”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합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으면 그 주장이 오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유 속 신랑은 예수님 자신이며 청한 사람들은 성도를 가리킵니다.



(마태복음 9:15, 마가복음 2:20, 누가복음 5:35)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이 말씀에서는 청한 사람들, 즉 성도를 혼인집의 손님들이라 비유하셨습니다.
하객을 불러놓고 신부 대신 결혼을 시키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성도는 결코 신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신부는 누구일까요?
신부가 언급되지 않았던 공관복음서의 기록과는 달리 천국 혼인잔치가 성대히 열리는 장면을 기록하며 아내, 즉 신부를 언급해놓은 책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입니다.



 (요한계시록 19:7~9)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
··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

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사도 요한은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열리는 모습과 그의 신부, 청함을 받은 손님들을 계시로 보았습니다. 청함을 입은 복 받은 자들은 당연히 성도들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등장하는 어린양의 아내는 누구일까요?


(요한계시록 21:9~10)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

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신부의 모습을 보고 싶은 사도 요한의 요청에 천사가 보여준 것은 다름 아닌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이 하늘 예루살렘에 대해 언급한 사도 바울의 증거를 보겠습니다.



(갈라디아서 4: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신부를 일컬어 요한은 어린양의 아내라 했으며 하늘 예루살렘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예루살렘에 대해 사도 바울은 우리의 어머니라고 설명했습니다.
우리 아버지의 아내는 당연히 우리의 어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성도인 우리는 과연 하늘 어머니의 존재를 어떻게 믿을 수 있으며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아버지 하나님만 믿어온 기성교인이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를 믿을 수 있는 잣대를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62:6~7)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

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예루살렘을 일컬어 쉬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계속 일을 하도록 만들겠다는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이 단순히 성벽이라면 어떻게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이 말씀에 나타난 예루살렘은 사도 바울이 증거 한 우리의 어머니 즉, 하늘 어머니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누가 예루살렘을 세운다고 하셨습니까?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영적 예루살렘이신 하늘 어머니는 아무나 세울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섬기고 알아야 하는 하늘 어머니는 오직 아버지 하나님만이 세워줄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태초에 창조하신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도 알려주셨습니다.


 (창세기 2:22~23)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빗대로 만든 하와를 아담에게 데려오자 아담은 하와를 보고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말하며 ‘여자’라 칭했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성경에 아담과 하와는 단지 아담과 하와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로마서 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요한계시록 22:20)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성경 맨 마지막에 ‘오실 자’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즉 아담은 오실 자를 표상하고 있다는 것은 결론적으로 아담이 예수님을 나타낸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아담이 하와를 일컬어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칭했다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어머니 하나님을 증거해 주실 것을 예언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창세기 3:20)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또한 아담의 아내에게 ‘하와’라는 이름을 준 것도 아담입니다. 하와라는 이름의 뜻은 ‘생명’입니다. 이 말씀은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하늘 어머니를 알려주실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 알려주시고 세워주신 분이 바로 우리의 영혼을 낳으시고 구원하실 하늘 어머니입니다. 하늘 아버지와 하늘 어머니께서 이 시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요한계시록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성령과 신부,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 나아온 자들이 천국 혼인잔치에 청함을 입은 복 받은 자들이다.



댓글 1개:

  1. 한 나라의 왕 혹은 대통령의 결혼식에 초대를 받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죠..
    그런데 우리는 이보다 더 영광스러운 초대를 받았습니다.
    바로 어머나하나님께로부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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